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은 12살 진희가 어린이 같지 않은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찍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에게서 자란 진희가 세상을 관찰하고 그로인해 알게 되는 어른들의 비밀 속에서 12살 진희는 이중적인 자아를 갖으며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분류함으로써 외로운 가슴 속의 상처를 겉으로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재해석한 라캉의 정식분석은 주체의 분열에서 시작한다는 점과 일치한다. 진희는 항상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또다시 버려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포장하고 상처를 애써 덤덤하게 묻으려 마음속 “극기 훈련”을 하며 아픔을 극복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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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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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재해석한 라캉의 정신분석은 주체의 분열에서 시작된다.>
진희는 이중적인 자아 속에서 늘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아를 분리시키는데 그것은 바라보는 나를 말하기도 하지만 보여지는 나를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것은 '시선' 이고 보여 지는 것은 '응시'이다. 내가 보기만 한다고 믿는 단계는 상상계이고, 보여짐을 아는 단계가 상징계이다. 이 둘을 합한 변증법으로 바라봄과 보여짐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것이 실재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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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돌이 차곡차곡 쌓인 제방은 언덕처럼 비스듬하다. 이 길을 가면서 나는 이따금 일부러 길에서 벗어나 제방의 돌 위에 올라가서 위태롭게 걸음을 옮겨보기도 했었다. 내가 그렇게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걸어보곤 하는 제방 위에 지금 염소가 한 마리 매어져 있다. 언젠가의 나처럼 염소도 균형을 잡으려고 사선으로 서 있다. 사선으로 선 채 매애애 하고 운다. 하얀 털에 황혼이 불붙어 불그레해진 그 염소는 나를 보더니 또 한번 매애애 하고 운다. 고개를 길게 빼며 목젖을 오래 떠는 그 울음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깐 염소를 바라본다. 아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채 매애애. 계속해서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이 염소를 누가 빨리 와서 풀어주고 데려갔으면 싶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그런 지시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염소의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젊은 남자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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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를 풀어주지 못해 미안한 그는 염소 옆의 돌 위에 앉는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분다. 염소는 자기를 위로하는 하모니카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울음을 멈추고 가만 있는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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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진희가 보고 있는 염소는 사실 진희 자신이다.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고 기둥에 묶여 울고 있었던 진희를 집에 돌아온 아빠가 발견했다. 하지만 아빠에게도 버림받은 진희는 끊임없이 사랑의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완전한 충족은 완전히 상실되었기에. 이를 대신할 만한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염소의 뒤로 나타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남자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느끼며 묶여 있는 염소를 풀어주었으면 하는. 하모니카 연주를 통해 염소와 진희를 위로하는 그에게 느끼는 첫 사랑의 감정과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남자를 아버지 [라캉의 상징화]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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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삶의 경고를 깨달았다.
경악한 나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남자 쪽으로 마구 달려가 보았다. 그렇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모든 것이 명백했다. 그날 하모니카를 불던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었다. 허석이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염소의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내 사랑이 이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허석이 아닌 이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를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다.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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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진희는 버림받았던 그때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주 어렸던 그때. 이미지만 남아버린 상상계적 공간에 버림받았던 그때 그대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첫사랑을 잊으려고 하자 이미지만 남아있던 그가 상징계로 진입을 했다. 하모니카를 불던 이미지 속의 그가, 사실은 그가 아니라는 것을. 상상 속의 만들어낸 이미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라캉의 삼원계 중 실재계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진희는 어두움 속의 그림자가 허석(the realistic)이라고 인식했지만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림자 속엔 어쩌면 존재 할 수조차 없었을 그녀의 첫사랑(real)이 있었던 것이다.
- 출처 : 은희경 <새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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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에 제출했던 레포트 내용이다.
어쩌다 다시 꺼내보았는데
다시 글을 쓰고 싶다.
<새의 선물>은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진희는 나 같았고 나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시 <새의 선물>을 꺼내 보아야 겠다.
#소설 #책읽기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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