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웃음>에서도 '라캉의 상징화'를 찾아볼 수 있다.
태어나 얼마 되지도 않은 뤼크레스는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 같은 이지도르를 사랑하게 된다. 이지도르는 키도 크고 덩치가 큰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 같은 이미지를 형상화 하는 것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나이가 많은. 어리광을 받아주는 사람.
이지도르는 아버지를 [라캉의 상징화]로 표현했다.
<웃음>은 프로이트의 잠재의식과 의식,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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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때, 한 남자가 고아원을 찾아왔다. 원장 어머니의 친동생이라는 그 남자는 다른 곳에서 남자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뤼크레스가 성장이 더딘 것 같으니 진찰을 해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그녀의 몸을 마구 더듬었다. - (1.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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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남자들에게 불쾌감과 혐오감이 생긴 뤼크레스는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의식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혐오감은, 청결을 지키는 감정으로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감정으로 볼 수 있는데, 성추행을 당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남자들에게 혐오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자들에게 끌렸다. 뤼크레스가 여자들에게 끌린 것은 여자들만 지내는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성과 쾌락을 금기시하고, 윤리와 도덕을 내세우며 억압했기 때문에 잠재의식 속에서 죄를 짓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마조히즘에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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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는 컴퍼스의 뾰족한 침으로 자기 몸을 찌르고 있다가 마리앙주에게 들켰다. 마리앙주는 은근하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원한다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 (1.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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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크레스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다정함에 유쾌로 받아들였지만, 의식은 그 것이 마리앙주로 하여금 자해하게 되는 것이고, 당연히 좋은 결과가 얻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지만 전의식을 통해 무의식의 소망을 왜곡해서 전달받고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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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에 고통을 가하는 사람을 선택한 것도 자기이고, 고통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도 자기라고 생각했다. - (1.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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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자아와, 이드를 통해 분석해 볼 수 있는데, 뤼크레스는 본능적으로 성적쾌감에 빠져 계속해서 성적 욕구를 성취하려고 하였다. 계속되는 자해를 통해 자신이 싸움의 승자가 된 것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자아를 찾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자해를 마리앙주와 친구들이 놀리게 된 4월의 물고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뤼크레스는 온몸에 그려진 물고기 그림을 면도칼로 파내고 있었는데,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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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물고기가 없다니까!” 그 말에 에스키모인은 벌떡 일어나서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며 소리쳤어요. “도대체 당신 누구요? 신이요?” 그러자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대답했죠. “이 스케이트장 주인이다. 왜!” - (1.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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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크레스의 입에서도 쿡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줄기 생명의 기운이 죽음의 충동과 뒤섞인 것이었다. 웃으면서 자살하기란 어려운 법. 그녀는 근육의 긴장을 풀고 자기도 모르게 면도칼을 내려놓았다. - (1.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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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터진 후 뤼크레스의 이드는 자살충동을 통해 죽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지만, 라디오라는 매개체를 통해 충동과 욕구를 억누르게 되면서 자아를 되찾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리우스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초자아가 생기는데 그로 인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라캉은 이러한 초자아가 텅 비었다고 말하는데 뤼크레스에게 다리우스의 유머는 자살의 순간에 웃음을 준 사람일뿐이지 정작 다리우스와 자신의 관계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리우스를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했던 초자아는 뤼크레스의 자살에는 관심이 없고, 또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도 실제처럼 믿는 환상에 의해서만 작동을 하기 때문이다.
다리우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취재를 하게 된 뤼크레스는 다리우스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끊임없이 이지도르와의 사랑을 원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초자아가 텅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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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도르 카첸버그. 당신은 누구야? 왜 나를 짜증나게 하면서도 내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는거야?” - (1.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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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크레스는 끝없이 이드가 발생한다. 이지도르를 만난 후 이지도르에게 또다시 성적 욕구가 생겨났고, 이드는 계속해서 끊임없는 자아와 충돌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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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를 무겁게 만들던 것을 떨쳐 버린 것 같아. 그러면서 내가 적게 가진 것과 나에게 없는 것을 주고 있어. 결국 진정한 만남이란 이런게 아닐까? 두 사람의 콤플렉스가 서로 보상되는 것. - (2.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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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아의 윤리는 자아에 의해 상정되고, 종종 자아의 욕망에 대립되거나 모순 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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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말아요. 이지도르. 당신도 잘 알잖아요. 진실은 공표하기가 어려운 법이에요. 게다가 사실 아무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 (2.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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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의 사건을 조사하던 뤼크레스는 결국 해답을 얻었지만, 사실을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초자아가 공동체 모두가 그렇게 믿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에.
또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는 누구나 끊임없는 자아와 이드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희망도 생기는 것이고, 목적달성을 위한 꿈도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출처 : 베르나르 베르베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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